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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17 | 미호빌딩 자살테러 사건(美呼빌딩 自殺테러 事件, Miho Tower Suicide Terror)은 2019년 10월 17일 오후 9시 59분경, 아부 쿠찬 셔번 월배지구의 미호센트럴빌딩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 및 붕괴 사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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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19 | 폭발 이후 387명이 사망하고, 576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남겼다. 이는 유고랜드 역사상 최악의 단일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동시에 학생 인권, 사교육 실태, 건축물 안전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논쟁을 촉발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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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 == 배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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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 배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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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 전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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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2 | 2019년 10월 17일 오후 9시 59분, 미호센트럴빌딩 5층 동측 복도 중앙에서 갑작스러운 섬광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폭심지는 5층 학원 구역의 계단실 인근이었으며, 좁은 복도와 밀폐된 구조 때문에 폭압이 한 방향으로 길게 뿜어져 나갔다. 강의실 내부에 있던 책상, 의자, 화이트보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부서져 복도를 채웠고, 폭발 직후 밀려나간 압력파가 유리창 수십 장을 동시에 박살내면서 바깥으로 흩날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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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36 | 폭발 5분 후, 5층과 4층이 완전히 주저앉으며 상부 하중이 한꺼번에 3층과 2층에 전달됐다. 하층부 구조물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며 건물은 중앙부부터 가라앉기 시작했고, 약 22초 만에 미호센트럴빌딩 전체가 기울어진 채 붕괴했다. 붕괴 시 발생한 먼지와 잔해는 인근 도로를 덮쳤으며, 차량 수십 대가 파손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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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폭발 직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부축하거나, 피투성이 얼굴로 먼지 속을 헤매며 도움을 찾았다. 곳곳에서 구조 요청과 울음소리가 뒤섞였고, 부서진 전선에서 튀는 불꽃과 가스관 파열로 인한 2차 폭발이 이어졌다. 첫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건 불과 3분 뒤였으나, 폭발 직후 건물 잔해의 불길과 붕괴 위험 때문에 진입은 더 지연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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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폭발 직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부축하거나, 피투성이 얼굴로 먼지 속을 헤매며 도움을 찾았다. 곳곳에서 구조 요청과 절규하는 소리가 뒤섞였고, 부서진 전선에서 튀는 불꽃과 가스관 파열로 인한 2차 폭발이 이어졌다. 첫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건 불과 3분 뒤였으나, 폭발 직후 건물 잔해의 불길과 2차 붕괴 위험 때문에 진입은 더 지연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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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40 | 폭발이 발생한 직후 유고랜드 현지 언론과 SNS에는 ‘반군의 대도시 테러’라는 오보가 빠르게 퍼졌다. 당시에는 유고랜드 반군의 공격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당국과 시민 모두 이번 사건을 무장세력의 폭탄공격으로 오인했다. 실제로 첫 구조 요청과 동시에 경찰특공대와 대테러부대가 테러 진압 태세로 출동했으며, 도심 상공에는 무장 헬기까지 배치되었다. 다만 이후 현장 수색 결과, 사건은 반군과 무관했으며 학생들의 계획적 자살테러임이 밝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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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61 |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자 발견 가능성은 줄어들었지만, 구조팀은 48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수차례의 작은 붕괴와 화재가 발생했으며, 구조 인력 중 일부는 연기와 분진 흡입으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폭발 2일째 되는 날, 마지막으로 구조된 생존자는 천일금강타워의 잔해 속에 있던 10대 남성으로, 무너진 책장과 콘크리트 판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버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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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63 | 이로써 10일 동안 진행된 구조 작업은 3명 구조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현장은 본격적인 수습 단계로 전환되었으며, 구조 활동은 잔해 제거와 시신 수습 위주로 진행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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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 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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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 여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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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 교육계 및 사회적 반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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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 학생 인권에 대한 정책 변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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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 까발려진 만연한 부실공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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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 관련 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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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 반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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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 === 종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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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 국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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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 === 국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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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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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 매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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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 서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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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 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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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 드라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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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 다큐멘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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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 그 밖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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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 당시 방송 및 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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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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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 ==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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